식민사관, 지배의 논리

식민사관은 일제가 조선에 대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야만-문명, 정체-발전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를 앞세워 조선의 역사를 폄하하고 식민 지배를 근대화를 위한 시혜로 포장한 역사관입니다. 이 글에서는 식민사관의 탄생 배경과 주요 논리를 살펴봅니다.

식민사관은 일제가 조선에 대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자 내세웠던 역사관입니다. 이 역사관은 세계를 야만과 문명의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누고, 문명 세계는 끊임없이 발전하는 반면 야만 세계는 정체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서구와 일본을 문명화된 발전의 세계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야만적 정체의 세계로 규정하며, 조선 또한 이 야만적 정체에 속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문명 세계의 선진 체제를 이식받아야 야만에서 벗어나 발전할 수 있으며, 식민 지배는 수탈이 아닌 근대화를 위한 시혜, 즉 은혜로운 행위로 포장되었습니다. 이는 조선의 과거 역사를 최악의 끔찍한 역사로 인식하게 하여 자기비하적 사고를 심어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식민사관은 박은식 선생이 저술한 『한국통사』와 같은 민족주의 사서의 확산에 대한 대항 논리로 탄생했습니다. 『한국통사』는 일제의 침략이 얼마나 부당한지를 논리적으로 서술하며 조선의 아픈 역사를 되짚었는데, 일제는 초기에는 이 책의 유포를 막으려 했으나 실패하자 스스로의 역사 논리로 조선의 역사를 덮으려 했습니다. 이를 위해 일제는 1910년대부터 ‘조선 반도사’ 편찬을 준비했으며, 1920년대에는 조선 총독부 직속 기관인 조선사 편수회를 출범시켜 본격적인 역사 편찬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7~8년간의 편찬 끝에 1930년대 『조선사』를 완간하여 식민사관을 대내외적으로 유포했습니다. 또한 경성제대 교수 등을 중심으로 한 청구학회도 식민사관 확산의 주요 단체로 기능했습니다.

식민사관은 고대사 부분에서 여러 논리를 전개하며 조선 역사의 자주성과 발전 역량을 부정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선동조론’은 일본과 조선의 조상이 같다고 주장하며, 단군을 일본 시조신과 연결시켜 일본의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또한 ‘타율성론’은 조선이 자율적으로 국가를 형성할 능력이 없었으며, 한반도 북부는 중국 대륙 세력(한사군), 남부는 해양 세력인 일본(임나일본부설)의 지배를 통해서만 국가를 경험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조선을 스스로 발전할 수 없는 ‘반도’로 규정하여 ‘반도사관’이라고도 불립니다.

중세와 근세사, 특히 조선 시대를 두고는 ‘정체성론’과 ‘당파성론’을 내세웠습니다. 정체성론은 고려와 조선의 역사가 발전 없이 고대에 머물러 있었다고 주장하며, 개항 이전의 조선 사회를 일본의 고대 촌락 종교와 다를 바 없는 상태로 폄하했습니다. 이는 조선 사회가 스스로 중세를 경험하지 못했기에 일제의 식민 지배를 통해 비로소 근대화된 문명을 이식받을 수 있었다는 논리로 이어졌습니다. 당파성론은 조선의 정치가 당쟁과 파당 싸움으로 일관하여 발전 없이 파멸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라고 규정했습니다. 이는 결국 조선은 스스로 멸망할 운명이었으므로 일본의 식민 지배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으며, 떨어진 물건을 집어든 것과 같다는 논리로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