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사학자의 다각적 독립

민족주의 사학자 박은식과 신채호는 민족의 혼과 자주성을 역사를 통해 강조하며, 언론, 교육, 단체 활동, 임시정부 참여, 무장투쟁 지원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민족의 정신을 일깨운 민족주의 사학의 출현

일제강점기, 나라를 빼앗긴 민족에게 희망과 자긍심을 불어넣기 위해 민족주의 사학이 등장했습니다. 그 선구자 중 한 분인 박은식(朴殷植) 선생은 민족에게는 형태인 국백(國魄)과 정신인 국혼(國魂)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국백, 즉 나라는 비록 빼앗겼지만, 국혼인 역사를 보존하고 되살린다면 언젠가 국백도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민족의 정신을 일깨우는 역사 연구를 독립운동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고대사 연구를 통해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을 찾아 그 우수성을 알리고자 했으며, 『동명성왕실기』, 『발해태조건국지』, 『천개소문전』, 『대동고대사론』 등의 저서를 통해 민족의 영웅호걸들을 다루며 독립을 되찾고자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특히 만주 망명 후 대종교와 관계된 학교에서 근무하며 대종교도가 되었는데, 단군으로부터 이어지는 민족의 혼을 찾으려 고대사에 더욱 천착했습니다.

근현대사를 기록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을 모색하다

박은식 선생은 고대사 연구 외에도 근현대사 연구로도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한국통사(韓國痛史)』는 개항 이후 국권이 침탈되는 과정을 기록하며 일본의 식민 지배가 부당함을 폭로했고, 이는 일제가 식민사관을 내세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어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를 통해 피 흘린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록하며 민족의 투쟁 의지를 고취하고자 했습니다. 학문 외적으로도 그는 실천을 강조하는 양명학적 유학자로서, 기존의 성리학적 유교의 개혁을 주장한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을 발표하고 대동교(大同敎)를 창립했습니다.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동하며 언론을 통한 계몽운동을 펼쳤고, 독립협회, 대한자강회, 서북학회, 동제사, 신한혁명당, 대한 국민 노인 동맹단 등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이승만 대통령 탄핵 이후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임시정부의 통합을 위해 내각제 등 지도 체제 개헌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아와 비아의 투쟁으로 역사를 재해석한 신채호

단재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변하지 않는 하나의 마음'이라는 뜻의 호처럼 지조 있는 삶을 살며 민족의식을 고취했습니다. 그는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으로 정의했습니다. '아'는 우리 민족, '비아'는 다른 민족을 의미하며,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과 외래 사상이 끊임없이 충돌해 왔다고 보았습니다. 신채호 선생은 박은식 선생이 '혼'이라 부른 민족 정신을 '낭가(郎家)'라 칭하며, 단군,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자주적 사상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조선사연구초』, 『조선 상고사』, 『조선 상고 문화사』 등 고대사 연구에 매진하여 민족의 자긍심을 찾고자 했습니다. 특히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을 우리 고유의 자주적 사상(묘청)과 사대적 외래 사상(김부식) 간의 투쟁으로 해석하며, 묘청의 패배를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으로 규정, 민족 자주정신의 쇠퇴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평가했습니다.

언론 활동과 무장투쟁으로 독립을 이끌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 연구와 함께 다양한 실천적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독사신론(讀史新論)」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하여 사대주의적 역사 인식을 비판하고 민족 중심의 역사관을 제시하며 민족주의 사학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그는 박은식 선생과 함께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했으며, 망명 후 연해주 『권업신문』 등에서도 언론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신민회에 참여하고, 박은식과 함께 동제사, 신한혁명당에서 활동했으며, 대동단결선언에도 참여하여 임시정부 수립을 제의했습니다. 임시정부 초기에 국무총리로 참여하기도 했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 중심 노선을 비판하고 무장투쟁 노선을 지지하며 무정부주의 독립운동가들과 연대하기도 했습니다. 무장투쟁 자금 마련을 위한 활동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 순국한 그의 삶은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한 치열한 투쟁의 기록 그 자체였습니다.